전과 달리 최근에 보면 우리 영화광고가 많이 나온다. 영화라는게 개인 취향에 맞는것을 봐야 하기때문에 꼭 우리나라 영화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내가 우리나라를 보려고 하는 이유는,
1. 외국인 작가의 뜻을 따를 필요가 없다.
2. 영화는 허구라지만, 얼굴색 다른 사람들의 얘기는 동질화 되기 쉽지 않다.
3. (이게 제일 중요한건데.. ) 보고싶은 영화를 다 볼 수 없기 때문에…
그에게는 미묘한, 혹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하면서 버리라고 했던 ( 종종 여기가 좀 “덜 사적인 페이지”라는 것을 망각하곤 한다. 하지만 손님도 없는 무료한 찻집에서 못할게 뭐가 있으랴, 황폐해 버린 집구석에서 씁쓸한 사진을 보느니, 이곳에서 지내는게 더 나을 수 있으니.. 혹시 알까? 손님중에 누군가가 올지도.. ) 미련에 대한 흔적인지도 모르겠지만, 영화 팜플렛을 모아 오는 버릇이 생겼다. 스캐너라도 하나 있으면 편집해서라도 올리면 좋겠지만, 금전적 문제로 아직 구입은 미루고 있다. 흠흠 괜한 딴 소리를 했군.
오! 수정
어색한 일상을 보려고 한건 아니지만, 처음 봤던 “강원도의 힘”만큼 섬짓한 영화를 보기는 쉬울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섬짓하다는 표현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빤히 내 옆 얘기에 웃음을 보였던 사람들을 아마도 영화가 끝나고 나서의 씁쓸함과 사실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내깔겨 보여줬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리 반론을 내새울것 같지는 않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몇달 후였는데, 해남의 어느 절에 갔을때에 산사 한 구석에서 시주받던 기와장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지금의 모습을 예상할 수 있었더라면, 그때 기와에 또다른 미련을 남겼어야 했다는 후회를 만든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 이응경씨가 출연한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이 영화는 제목은 의외로 다른 곳에서 패러디 되고 있다. 혹시 강남역에 가본적이 있는가? 길가에 있었던 술집중에서 “돼지가 고추장에 빠진날”이라는 간판을 가진 곳이 있다. 술집에 못갔던 것 처럼 아직 홍감독의 첫번째 영화는 보지 못했다.
“오! 수정”
제목은 두가지 느낌을 내게 동반시켜준다.
하나는 주인공의 이름이라는것과 수정이라는 보통명사에서 오는 느낌이다. 각기 명사라는것에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는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그녀라는 의미가 있는 반면에 하나는 일반적인 사물을 가리키는 단어일 뿐이다. 물론, 둘다 곱다는 의미를 동반하기는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나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단어이겠지만, 반면에 누구에게나 동일한 소유를 제공하기는 힘들다. 귀한 물건은 그 물건을 소유하는 사람에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기 보다는 그 물건 자체가 소유할 사람을 선택한다. 소유하는 사람은 마치 자신이 그를 선택했다는 착각을 한다. 하지만 당사자인 수정은 자신이 자신을 가질 사람을 선택한다. 반대로 생각한다면, 수정은 자신이 소유할 사람을 선택한다.
영화에서는 – 비록 이것은 일요일에 본 영화 예고를 많이 참조한 것이지만 – 사랑이라는 동일한 사건이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기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뒤집어 얘기를 해보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의적 사고일 뿐, 그저 모호한 감정으로 서로 뒤엉키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은 과정만 다를뿐 결론은 같다.
하지만 현실은? 아쉽게도 그렇지 못한것 같다.
……….
종종 영화가 삶을 반영한다기 보다는 삶이 영화를 반영하는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홍감독의 영화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특이하게 흑백영화이다.
극장 개봉을 전제로 하는 흑백영화는 꽤 오랜만에 나온것으로 안다.
어느 신문에 몇십년만에 나오는 흔치 않는 흑백영화라고 하지만 최근 몇년전에 주류는 아니지만 흑백필름으로 나온 영화가 있었다. 다만 맨 마지막 장면이 컬러이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한것인지 모르지만, 의도적인 표현을 위해서 사용한 것을 따진다면 몇십년만에 나온 영화는 아니다. 이전 최근작으로 나온 흑백영화는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좀 지루하긴 하지만 한번쯤 봐도 무방할만한 영화. (책임 못짐 -_-;;)
“오! 수정” , 이 영화의 한국 공식 개봉일은 2000년 5월 27일.
셀위 댄스
이 영화는 일본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보고 싶어하는 것인지 모른다. 학교내에서 영화상영회를 주관하는 동아리의 기획의도는 사실 어떤것인지는 모르지만 쉽게 일본 만화영화를 보여주려고 한다. 대부분 포스터(결코 이것을 대자보라 부르지 않기를)에 올라와 있는 것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구하기 쉽다, 벌써 다들 한두번은 이름은 들어 봤던 것을 위주다. 최소한 몇년전 것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별다른 공통점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의외로 일본 만화영화는 만원 정도의 돈만 있다면 구하는건 그리 어려운것은 아니라는것에 다들 동감할 것이다. 따라서 이전에 희소성에 따른 특권을 가지려고 했던 생각은 이미 지난지 오래 되었다. 또한 명감독이라는 분류는 사실 어디서 나왔는지는 잘 모른다. 투니버스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정도의 분석을 가진다면 모를까 그게 아닐때에는 사실 유사의식이나 의사의식에 빠진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인 평도 평이겠지만, 누군가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 전반적인 사회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이것은 마치 “모래시계”에서의 정동진과 내 개인적으로 기억되는 “정동진”이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쉘위댄스
우리에게 중년이 있을까?
60년대의 끔찍한 데모 ( 60년대의 일본 학생운동는 우리와는 성격의 차이가 있다. 정확한 내용까지는 모르지만, 80년대 후반쯤에 들어선 부분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을까 모르지만 일본은 어쨌든 다르다. ) 가 있긴 했지만 우리가 가지지 못한 중년을 그들은 가지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에겐 여유가 없게 느껴진다. 일에 치이는 영화 ( 안성기 출연작인 “남자는 괴로워”. 같은 이름의 영화가 일본에도 있다.)에서 약간 그런 모습을 비추긴 하지만 우리의 대부분의 시선에서 중년은 없다. “실락원(이영하 출연작)”의 예를 들지는 모르지만 그건 엄연히 일본 소설이였고, 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 무렵의 멜러물들은 이른바 호스테스 영화에 지나지 않는다.
이 영화 한국내 공식 개봉일 : 2000년 5월 13일
( 전에 상영된적 있음. )

안성기라는 배우는 영화내에서 보다 영화밖에서 진지해 보이는 사람이다.(내가 보기엔) 지금까지 나온 영화중에서 그를 제대로 표현한 영화가 있을지도 사실 의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오래된 영화인 “만다라”에서 보여준 인상(사실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_-;; )만한것을 찾기는 그리 쉽지가 않다. 지금까지 그의 모습은 크게 과장되어 나타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의 카리스마가 너무 크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리 기쁜 젊은날”에서의 모습이 인상이 남는다. 과장되지 않는 절제된 모습을 보여 줄수 있는 배우는 그리 흔하지 않으니까. (앞서 잠깐 얘기한 “남자는 괴로워”에서 약간 과장된듯한 모습이 있긴 하지만 의도된 과장은 극을 이끈다는 느낌을 준다. 이 영화에서 안성기씨의 비오는날에 우산가지고 춤을 추는 씬-마치 “Singing in the rain”같은-이 나온다.)
킬리만자로에서 한물간 주먹으로 나오는게 최근의 안성기씨의 모습같아 보인다.
최근년 들어서-물론 “퇴마록”이 있긴 하다-신진 남자배우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올해 개봉된 이전의 두편의 영화-“구멍”, “진실게임”-가 그리 흥미를 끌지 못한것이 못내 아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노장은 죽지 않는다.
박신양의 묘한 카리스마-순수함과 야비함(팜플렛에 표현되길)이 같이 가지고 있는 배우를 어떻게 이끌지에 대해서 눈여겨 볼만한 영화로 생각된다.
공식 개봉일 : 2000년 5월 20일
홈페이지 : http://www.kill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