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회귀물을 추억하며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던 순간이, 딱 그때는 아니더라도 지나고 나먼 생각나는 순간들이 있다. 그걸 시점(point)라고 부르는게 맞을지, 지점(spot)이라고 하는게 맞을지 모르겠다. 시간이라는 게 공간과도 연결되어 있다 보니, 시공간 지점(spot point)라고 부르자.

현재까지의 기준으로는 돌아가고 싶은 시점이 변곡점이 되었던 때, 지우고 싶은 흑역사 바로 앞일 것 같은데, 내가 돌아가고자 하는 시점은 1997년 12월 7일 무렵이 떠오른다.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에 있는 카페 문앞에 걸린 아르바이트생 모집 공고를 아무 생각없이 알바를 구하는지 물어봤다. 길지 않은 면담을 뒤로 하고 집으로 왔을때에는 웬지 착착한 심정이였다. 당시는 IMF 라 취업이 쉽지 않은 때긴 했는데, 사실 그건 겉으로 드러난 핑게일 뿐이고, 막상 난 어딘가에 취업을 한다던가하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었다. 자포자기였을 그 무렵에 인터넷 통신에 들어간 또 다른 알바자리에 이건 할만하다-전화로 사람을 상대하는게 쉽지도 않거니와, 내 성격에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있긴 했다 – 라는 의식된 자신감을 잔뜩 가지고 신청을 해버렸다. 시작은 미미 했으나, 그게 계기가 되어서 여기까지 이어온게 아닐까? 딱 그 시점에 가서 뭘 바꾸는건 아니겠지만, 그때부터라면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생각을 했더라면 – 십여년에 만난 후배가 대뜸 했던 얘기가 “형은, 게을렀어”, 사람은 바뀌기 힘들다고는 하지만 또 이런 회귀물에서는 바뀌는게 클리세니까, 한번은 기대해 볼만도 하지 않을까? – 머리속은 좀 채워지지 않았을까? 어줍게 시작했던 연애라는 걸 아예 안하고, 그저 아는 후배로만 남았더라면, 지금은 그냥 만만한 여사친 후배 정도로 남아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아무 생각 없었던 3년 보다는 생각있는 2년이 되었을지도 모르고, 결국은 망한 자회사에 남아 있는 노동자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어떤 만족할 만한 일을 하지 않았을까? 뭐, 지금보다 최악이 될 수 있겠지만, 사는게 다 쉬운게 아닌 것처럼, 그렇게 힘들어서 허덕이기까지만 하는 것도 없으니까. 지금까지 봐도 딱 그 경계치 어딘가에서만 허덕 거렸는데, 이 보다 더 할게 있을까? 그래봤자 딱, 이 보다 더 할만한게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뭐, 지금의 아들녀석이 없고, 독거노인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딱 그 시공간 시점에서 바뀔 수 있다면 또 다른 삶을 사는 것도 해볼 만할 것 같다.

딱, 그, spot point에 가지 못하니까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spot… 또 다른 spot을 내가 알았더라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허덕이게 만드는 뭐, 그런 spot이라도 좀 알았더라면? 그런 재능이 있었으면 좀 달라졌을라나? 음지의 자신감이라도 그게 결국은 양지의 자신감으로 바뀌는, 뭐 그런 거라도 될거라면 좀 재미난 일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의도한건지, 의도를 유도한건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딱 폐쇄적이고 음탕한 농담이, 농담이 아니였다면 어땠을까나? 농담삼아 얘기했던 삼류 소설을 밀고 나갔다면, 좀 다른 이 세계였을까?

회귀물이 꼭 이세계와 연결을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니.

인생 2회차, 오십부터라던데… 이제 또 다른 이세계를 만들면 어떨까?
단순한 망상적인 추억이, 이세계로 가는, 창구가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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