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할 시간즈음에는 그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그 엔 그가 부재했고, 시간이 훌쩍 넘은 다음에야 그는 돌아왔다. 중동의 어느 나라에서 뜨거운 햇살을 이겨가며 일한 – 7,80년에 그 흔한 건설산업 노동자 중에 하나였다. 어느틈에 끼어 있던 사진이나, 1년여만에 오는 휴가로 마중이나 배웅하러 가는 김포공항에서나 그거 중동의 어느 나라 – 바레인이거나, 쿠웨이트거나, 아니면 사우디라고 추측되는 그 미지의 – 에서 일했다는 것만 추측한다. 다들 그때는 그랬으니 그런 일을 한것으로 안다. 건설 시장이 좋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몇년을 그렇게 다녀오다가 또 몇년은 실직 상태였다. 우여곡절 속에 작은 가게로 몇년을 버티고, 역시나 당연한 수순이 되어버린 빌딩이나 아파트 경비로 몇년을 버티셨다. 그리고 지금 그는 늙은 육신에 찾아온 병마에 시달린다. 몇년전에 급하개 연락받고 병원에 갔을땐 이미 수술이 끝난 후에 몸에서 들어낸 종양 덩어리에 놀랬다. 부담을 주지 않으려 얘길 않았다고는 하나 그 상황이 되서야 어쩌지 못하고 울먹이며 연락 준 어머니가 그땐는 야속했다. 그 후에 이뤄진 항암치료약은 신장에 무리라 약을 쓰기도 어렵다. 몸은 쉽게 붇고, 이겨내려면 식사라도 제대로 하면 좋은데, 이내 입에 넣기도 쉽지는 않다. 예전 보다도 가늘어진 팔다리 때문에 나온 배가 더 도드라지게 나온 것 같다.
기력없는 모습, 무슨 생각이실지.
당신의 남은 시간은 알고 계실지. 남은 시간에라도 정리할 시간을 드리는게 맞을지 모르겠다. 몸이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건 아셨을때 이내 다가올 수도 있는 죽음에 두려움에 울먹거린 걸 봤었다. 거기에 얼마의 시간을 알려드리는 건 어렵다.
우두커니 촛점을 잃어가는 모습이 다 녹아가는 초와 같다. 심지는 바닥까지 내려갔고, 촛농도 다 녹아서 바닥에 흥건하게 널부러져 있다. 다꺼지지 전애 불안한 모습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예전 기억에 그랬을려나?
꽤나 뒤죽박죽 상태서 취업 – 어쩡정한 소개와 면접 – 을 하게 되었고, 생각지 못한 기회로 지금의 회사서 일한다.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고, 말 그대로 버텼다. 일이 힘들어도 내가 여기서 뭔가를 이루기 위해 20년을 버틴건가? 뭐 거창한 비전을 가졌던 아니다. 회사가 못견디거나,내가 못 견디거나 둘중에 하나겠거니 했다. 당시 벤처가 버티는 정도까지는 나도 버티겠거니 했다. 이리 저리 이직을 한다는건 부지런히 구직을 한다는 것과 같다. 나는 그리 부지런한 사람은 못된다. 기간과 기간애 대한 공백이 몇년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실직자이자 백수의 모습을 어렸을때 봤던 아버지의 모습과 겹치는 상상이 싫었다. 무슨 상황이더라도 ‘버티자’. 내 근속 10년때 소감이기도 했다. 강해서 남은 게 아니라 그냥 버텼다. 몇몇 동료가 나간 자리에 새사람이 왔고, 오래된 사람이지만, 눈에 띄지 않게 있다보니 전재감은 모르는 저 구석 뒷방 늙은이로 남았다. 어느 기억에 있기는 하겠지만, 딱 거기까지다. 무기력함인가?
그는 여전히 흐릿한 촛점으로 앞을 본다.
쇠잔해가는 걸 옆에서 보지만 얘길 해야할까?
대화도 거의 없었는데 막 시작하는 대화가 끝이라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