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자의 열매

90년대 중반무렵은 여성문학이라는 부분이 꽤나 들떠 있을때였습니다.
그중에서 처음 제가 접했던 사람은 최영미씨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였었고, 그 이후로 신경숙씨나 혹은 공지영씨를 접하게 되었죠.

그런데 하필이면 왜 90년대였을까요?

80년대의 투쟁( 전 사실 그쪽은 관심이 없는 상태랍니다. 일반적으로 그렇게들 부르기 때문에 임의의 차용에 지나지 않습니다.)후에 세상에 나온 386세대가 주위를 둘러보게 된건 90년대가 넘어선 이후였던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을 막 입학을 했었던 91년만 해도 서러워진 함성이 가끔이나마 나오긴 했으나 그저 “소리내어 울어낸다”라고 할정도로 남들의 이목을 끌기는 쉽지는 않았죠.
그래도 80년대 마지막 흔적이였던 “전대협”의 모습은 뭔가 당당한 구석은 있었고, 91년 그해 유난히 많이, 산화 했던 몇몇 학우들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그 이후 제가 군대갈 무렵이였던 93년은 제가 세상과 단절된것과 마찬가지로 모호한 웅얼거림으로 바뀐듯합니다.
94년도였던가? “전대협”은 “한총련”으로 바뀌었다고 하는 기사를 봤을때 80년대의 흔적은 조금씩 사라진듯 했었습니다. 마치 아직까지도 전 “초등학교”라는 말보다는 “국민학교”라는 말에 익숙한것처럼 새롭게 바뀌었다고 하는것은 어색하기 그지 없더군요.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90년대 한가운데에서 이제는 서른의 나이가 되어 버린 그들은 무엇을 했을까요?
학생운동 끝자락에 어쩌면 한쪽 외소된 모습이였을지 모르는 그녀들은 자신을 돌아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위 주체에 대한 사고에 돌아보게 되는건 사상적 동지보다는 현실에 더 가까워져야만 하지 않았나 합니다.
최영미씨의 시집을 처음 읽었을때는 모호함에 어리둥절하게 되더군요.
요즘의 신세대들의 엽기어린 모습과 비슷할지도 모르지만 씁쓸한 무거움이 베어 있는 내용이지요.

"풍금이 있던 자리". 신경숙
“풍금이 있던 자리”. 신경숙

신경숙씨는 뭔가 공허한 눈길만 주고 떠 있는 모습만 생각 나더군요. 그전에 읽었던 윤정모씨와도 비슷해 보이긴 해도 그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였습니다. 윤정모씨의 경우는 생계라는 부분과 같이 뒤섞인 듯한 느낌이지만, 신경숙씨는 생계와는 별개의 공허함이 생각나게 하더군요.

여성작가(90년대 나왔던)의 유희는 2000년을 끝으로 사라진듯합니다.
별달리 특색있지도 않았고, 그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듯한 모습처럼만 보였답니다. 아마도 그 사이에 그 특이했던 모습이 이제는 새롭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죠.

"내 여자의 열매". 한강
“내 여자의 열매”. 한강

한강?
1996년 계간지, “문학동네”에서 처음 그녀의 단편을 보았답니다. (“철길을 흐르는 강”)
그 무렵의 계보를 이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주는 작가였는데, 나이로 봐서는 80년대의 끝자락(태어난 해가 1970년)에 대학을 다니기 시작했지만 사고는 1990년대 학번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이전까지의 사람들과는 좀 다른 글을 쓰더군요.
(주변이 아닌 내적 모습은 신경숙씨와 닮은 구석이 있어 보입니다.)

근 5년만에 그녀의 소설을 읽어봤습니다.
사실 96년에 책 안쪽에 있었던 조그만 사진이 얼핏 기억나서, 그간 그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고 싶었거든요.
주문한 책이 도착했을때 책에 있던 그녀의 사진은 낯설기만 합니다.
지금 그녀의 나이가 서른 둘이라는것을 깜박하고 말었거든요. 제가 본 사진은 26이였을때니 그 만큼의 시간의 흔적은 있는 듯합니다.

단편중에서 “내 여자의 열매”는 그리 낯설지가 않더군요.
어디론가 가려고 했었던 사람도 생각났답니다.
묘한 현실과 가상의 헛갈림이랄까나….

올해 본 두번째 소설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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