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많이 만나고 얘기를 나눴던 그녀는 스물 세살 무렵이였다. 그 나이 또래의 전부를 전해 듣는다는 것은 무리겠지만, 그 나이또래가 생각할지도 모르는 것을 어느 정도는 들었을 것이다.
이틀 전쯤에, 무작정 ‘그녀’가 있을 만한 곳에서 기다리면 한번쯤은 멀리서나마 얼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년 넘게 내면 구석에 자리잡고서 사람을 뒤흔들다가도 얼핏 잠든 모습을 슬쩍 쓰다듬거나, 커다란 눈을 깜박거리지도 않고 빤히 바라보며 입가에 웃음을 짓기도 한다. 또 가히 뇌쇄적인 눈매를 보일때면 퍼뜩 깨어난 잠을 한숨과 담배연기로 방안을 가득하게 만든다. 그런 그녀를 직접 본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두렵다.
이전의 모습을 다 잊고 순간만을 생각하려 해도 두어시간 후에 뒷모습을 보게 되었을때, 오히려 ‘알지 못했다면, 보지 못했다면’ 마음속에 미련이든, 추억이든간에 허탈한 느낌을 더해지지는 않았을텐데…
그래도 한번만이라도 그저 멀리서 보고 싶다면 ‘그녀가 있을 만한 곳’을 가야 한다.
어디일까 하면서 곰곰히 생각해 내려 한다. 그런데 근 일년반을 알고 지냈지만 생각이 나지 못한다. 뭘 좋아하는지도 기억나지 못한다. 아니 기억해 내지 못하는게 아니라 처음부터 알지 못한다.
명동성당? 통인근처 ‘지대방’? 신촌의 모 라이브 밴드? 종로근처 술집?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같이 갔던 곳에 대한 기억일뿐 그녀 자체에 대한 기억은 아닌것 같다. 근 일년간은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보려고 했는데, 반대로 그녀가 말한 것을 되집어 보려고 했던것 같다. 한동안 연애했던 모습을 기억하려고 영화를 찾아서 봤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알고자 했었다.
혹시, ‘은수’를 통해서 ‘그녀’를 볼 수 있을까 했지만, ‘은수’도 아무런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 (마지 은수가 옆에서 지켜 보다가 흉내낸것 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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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은 최근(2001년 가을)에 나온 신경숙씨의 소설입니다. 무언가를 읽어야 했을때 ‘올해 초(?)에 이상문학상을 받았다’는 얘기를 신문에서 봤었고, 몇년전에 느낀 ‘씁쓸하고 느슨한’ 모습이 어떻게 변해버렸을까 하는 궁금하더군요. 그래서 책을 주문했었답니다.
시는 읽는 사람의 심정으로 변화된다고 하지만, 소설도 어느정도 그런게 있나 봅니다. 스물 세살이 된 ‘산이’가 다니는 길은 제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곳이더군요. 출판사 오퍼레이터 면접 결과를 알려고 전화를 걸었던 공중전화박스도 그렇고, 서대문 형무소 자리는 한때는 일주일에 서너번은 갔었던 곳이였고, 그 건너편 금은방 얘기가 나왔을때는 그 가게 옆에 있는 조그만 구멍가게와 치킨을 파는 맥주집에 저한테는 오히려 익숙하더군요.
거리가 낯이 익긴 하지만 몇번씩 반복될때마다 오히려 익숙힌것은 그렇게 믿고 싶은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또 흔적을 찾게 되는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해하지도 말고 있었다는 사실만 인지했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지난 토요일에 책을 다 읽었습니다.
모호함은 여전히 지속될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