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날이 너무 추워

갈 수 있는 가장 먼거리로 가려했다.
종점환승에 위로 가는 전철로 갈아탔다.
마지막 역은 ‘소요산’ .
뭘 그리 다 써 버렸을까? 역 근처에서 산으로 가는 길은 가까울까? 역 바로 옆이 산일까? 어둠침침한 산에 오르기는 쉽지는 않겠지? 산길을 따라가다 어느 나무 근처에서 잠시 쉬어가다 정신을 잃으면? 오늘은 날이 추운데 서서히 몸이 굳을까? 죽기에는 날이 춥다. 꽤나 처량하겠지?
생각이 뻗치다 보니 선을 넘어버렸다. 그 정도까지 가는건 나 역시 힘들다. 더 복잡해지고 귀찮아 진다. 죽고는 싶지만 귀찮은게 더 싫다. 게다가 하루 종일 제대로 먹은게 없다. 시간은 벌써 10시가 넘었다. 막차까지는 시간이 있지만 종점서 다시 돌아가는 걸 생각하자니 종점까지는 무리다. 종점을 두어개 남겨두고 내렸다. 돌아가는 전철은 종점에서 – 끝에서 시작이니 기점이라 해야 하나? – 대기중이다. 몇분은 지났는데도 계속 대기만 하고 있다.
늦은 시간에 외딴 전철역 플래폼에는 사람이 몇 없다. 젊은 청년 몇명이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꺼내 드는걸 봤다. 그제서야 빈속을 느낀다.
몇년전이였더라면 역에서 나와 근처 식당에 갔을거다. 빌어먹을 코로나만 아니였다면, 그랬을거다. 그러고 보니 여기까지 오는 내내, 늦은 끼니를 생각하긴 했다. 방금 전까지 허기를 못 느낀게 아니다. 계속 머리속은 빈속을 달래줄 것을 오는 내내 생각했다. 9시가 넘은 시각이라 식당에서 먹기는 틀렸고 편의점에서 김밥을 사들고 편의점 밖 건물옆에 서서 주섬주섬 포장을 풀고 입에 우겨넣으면 될까? 이런 날씨에는 따뜻한 라면 국물이라도 있으면 좋을덴데, 진작에 나왔더라면, 사무실 근처에서 먹었더라면… 아니.. 그럴 상황이 아니잖아. 식탐은 어쩔 수 없는건가? 까먹고 있다가 자판기에서 꺼낸 음료수를 보고 나서야 잠시 멈췄던 생각이 떠오른게 맞다.
서너 걸음 떨어져 있는 자판기 앞으로 갔다. 음료수가 아닌 허기를 채울만한 게 있는지 진열된 상품을 빠르게 훑어본다. 아무래도 초코파이 같은게 낫겠지. 계산된 ‘오예스’를 꺼낸다. 2개 들이 포장된 박스를 풀어서 하나는 주머니속에, 나머지 하나는 비닐포장을 뜯어 내자마자 허겁지겁 입에 넣는다. 순식간에 없어진것도 무서운데, 나중에 먹으려고 주머니 속에 넣어 둔걸 바로 꺼낸다.
허기에는 장사는 없겠지. 이미 난 생각만 저 멀리 갔을 뿐이고 그냥 그건 ‘사고’일 뿐이잖아. 10시가 넘은 시각에 허기가 졌을 뿐이라고.
자판기 앞에 다시 서서 또 빠르게 훑어 본다. 돌아가는 전철안서 주머니속에 남은 카라멜 종이를 만지작 거리며 아쉬워 한다.
눈이 내린다. 코트는 젖었다. 말리거나. 세탁을 하거나.

어제 갔었던 곳을 지도에서 찾아봤다. 선을 넘는 밤은 무리고 낮에는 한번 가봐야 겠다.

글쓴이 지민아빠

중년의 모바일 개발자. (코딩은 안함. -_-a) 집안일에 열심인 아내와 아직은 어린 아들과 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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