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에 작가(질문자)는?

학부때 AI 수업을 들었다.
지금와서 예전 기억을 곰곰히 더듬어 보면 여러 기법(?)중에 하나인 “전문가 시스템” 을 통해서 학습을 시키는게 주된 내용이였던건 같다.
말 그대로 임의의 “전문가”의 관점에서 규칙을 정의하고, 각 경우에 따라서 행동을 정하면, 그에 맞게 답을 얻는게 주된 내용이였다.
나중에는 여러 학습을 통해서 경우 수를 수만가지 생성하는 건데, 입력값이 같으면 예측은 항상 같게 마련이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불특정한 – 범위는 있긴 하겠지만 – 데이터를 받아서 스스로 패턴을 익히고, 결국에는 추론까지 하게 된다.
함수처럼 입력값이 있으면 정해진 결과값이 나오는게 아니라, 인간이 하는 행동 방식과 유사하게, 추측을 하거나 심지어는 망상을 갖기도 한다.

최근 들어서… 생성형 AI 관련된 책을 보다 보니, 결국은 어떻게 질문하는가에 따라서 원하는 답을 – 의도했거나, 실제 의미있는 – 얻는다.
심지어는 창작의 대상인 글까지 써 주기까지 한다.
상상의 나래를 장황하게 펼치는게 아니라, 상상하는 몇가지 단어 조합을 가지고 글을 쓴다.
두어개 AI를 통해서 얻는 짧은 단편(장편)이 내가 쓴것 보다는 훨씬 낫다.
(그나마 보는 눈이 있다는게 다행인가?)

막연한 감상으로 글을 써보겠다는 생각이 좀 허무하긴 하다.

프롬프트 (질문): 52세 개발그룹을 맡고 있는 남자가 7시 퇴근 시간을 40여분 남긴,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단상에 대해서 500자 내외로 글을 써줘.


코드 너머의 시간
오후 6시 20분, 사무실은 이미 절반 이상 비어있다. 대시보드와 간트 차트가 띄워진 모니터를 바라본 지 어느덧 10시간이 흘렀다. 남들과 다른 오후 7시 퇴근 시간까지 아직 40분이 남았다.
두 개의 모니터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노을빛이 프로젝트 관리 툴의 다채로운 색상과 대비되어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당장의 마감은 없지만, 어깨를 누르는 무형의 압박감이 있다. PM의 숙명일까? 언제나 완성되지 않은 일정표, 최적화되지 않은 리소스 분배에 대한 끝없는 고민이 머릿속을 맴돈다.
개발 팀원들은 자신만의 리듬으로 퇴근했고, 남은 몇몇은 각자의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다. 내 지시에 따라 코드를 작성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전체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의 고독을 느낀다. 당장의 마감은 없어도 완벽한 프로젝트 완수에 대한 책임감이 나를 이 자리에 붙들어두는 것을.
맞은편 자리의 김 과장도 나와 같은 7시 퇴근조다. 그는 팀의 기술 리드로, 내가 분배한 업무의 기술적 실현 가능성을 검토하는 중요한 파트너다. 그가 잠시 고개를 들어 시계를 확인하고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린다. 우리는 눈빛만으로 교감한다. 아직 40분, 무언가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공통된 조바심. 그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우리는 같은 배를 이끄는 두 선장 같은 존재다.
슬랙 알림이 잠시 고요를 깨지만, 중요한 내용은 아니다. 내일의 스프린트 미팅에 대한 언급. 내일도, 모레도 이 자리에서 같은 고민을 안고 있을 내 모습이 그려진다.
커피잔 바닥에 남은 찌꺼기처럼 하루의 피로가 가라앉는다.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지만 특별한 메시지는 없다. 7시에 퇴근해도 머릿속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프로젝트 리스크와 일정 조율 문제가 맴돌 것이다.
시계가 6시 40분을 가리킨다. 오늘의 업무 진행 상황을 정리하고 내일의 할 일 목록을 업데이트한다. 내일의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처럼. 맞은편의 김 과장도 비슷한 동작을 취한다. 우리는 매일 같은 의식을 치르고 있다. 삶이란 결국 이렇게 미완성의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7시, 모니터를 끄지만 머릿속 계획은 여전히 작동 중이다. 김 과장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짧은 대화를 나눈다. “내일 백엔드 쪽 리소스 좀 재분배해야겠죠?” 그의 한마디에 무언의 공감이 오간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아마 침대에 누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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