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도 눈물도 없이

냉혈한 과 뜨거운 피를 가진 사람을 말하면서 가끔은 혼동되는게 있다.
어느정도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불의를 보고 몸속에 뜨거운 피가 쏟아 오른다고 하면서 한쪽에서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다시 뜨거운 피를 강조한다. 감성과 이성을 조화하긴 힘들다. 아마도.. “인정머리”라는 말을 들이밀면서 어느정도 자기합리화의 어정쩡한 모습을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

지난 토요일에 “피도 눈물도 없이” 를 봤습니다.
그 유명한(?) 류승완 감독의 첫번째 영화입니다. 사실 그 이전에 두편의 단편극( 하나는 “단편영화”라고 붙이기에 적절하다고 판단이 들고, 다른 한편은 단지 짧다는 의미로 단편영화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 있었던 터라서 또 묘한 프리미엄(우리한테도 이런 감독이 있다는 것을 떠 벌리기 위한 재료가 된것일지도 모릅니다. 정작 자신이 어떤지는 잘 모른 상태에서 주변에서 적당하게도 차용하기 쉬운 코드?이기 때문에 더더욱 더 가치가 높아진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어서 진작부터 볼 생각을 했었지요.
영화는 단순합니다.
불법 투견장에 걸린 내기돈을 가로채는게 영화의 주된 내용입니다.
중간 중간.. 거친 대사가 난무하고 전작에 이은(“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너저분한 붉은 색이 왔다갔다 합니다. 단순 주먹다짐이 아니라 무협과 같은 몸놀림(!)이 왔다갔다하지요. 결국에는 의외의 (어쩌면 복선일지도 모르는) 인물이 (역시 예상했을 수도 있는) 돈을 차지합니다.

그냥 영화 내용만을 봤을때는 특이한것은 없습니다.

…..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은 인천입니다.
인천에서 태어났고 구시가지(동인천역에서 하인천을 아우르는)에 대해서 막연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영화속 배경이 익숙해 보여서 그런것은 아닙니다. 택시에 써 있는 차번호판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인천일까요?
혹시 텔레비젼에서 투견하는것을 본적이 있나요? 원래 그런 폐선에서 하는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에 얼핏 봤을때는 밖에서 한것으로 봤는데.. (개가 싸우는건 비슷하게 망을 쳐둔데서 하긴 하지만) 영화속에서는 철저하게 폐선속에서 합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인천 동구입니다.
오래된 동네이긴 했지만 그리 지저분하거나 하지는 않았지요. 조금만 나가면 전철역도 있고 지하상가도 있던 그런 동네였지요.
조금만 더 가면 근처에 공장들이 보이는 동네가 있습니다. 여섯살 무렵에 잠깐 살았던 곳이였는데, 언덕배기 위에 극장이 하나 있고 언덕을 오르는 길에는 자잘한 가게가 있었던것으로 기억합니다. 몇년전엔가 외가에 가는길에 갔을때 많이 변했더군요. 거리는 전보다 지저분해지고 색은 바래지고 언덕길 오르는 길 옆에는 홍등가로 변한지 오래되었는지 간판이 낡아보이더군요.

“파이란”도 그렇고 “고양이를 부탁해”도 그렇고 다들 떠나고 싶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곳인지도 모릅니다. (신시가지쪽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두 영화 모두.. 배경이 비슷한 지역입니다. )

영화에서는 쇠락해버린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여기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그리 다르지 않더군요.
경진은 한때는 잘 나갔던 금고털이 였지만 지금은 자신도 아닌 남편의 빛 때문에 별다른 희망없이 삽니다. 독불은 권투 신인왕과는 다르게 투견장 관리를 하고, 독불의 애인인 수진도 가수를 꿈꿀뿐 눈밑에 상처를 가진채 살고 있지요.
또 나이가 한참 먹은 퇴물 건달들은 한때는 자기 밑에 있던 부하에게한소리 못하고 기죽은 듯이 삽니다. 또.. 한때는 잘 나갔던(경진이 오히려 “당신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야”라는 말까지 들은) 경찰은 지금은 그저 “육감이 들어맞을꺼야”라는 식으로 범인을 잡을 생각만 합니다. 그리고 사채업자(?) KGB는 그런 사람들을 부리면서 지내지만, 역시 부패한(혹은 원래 그런건지도 모르는) 권력(?)에 빗대어 보려고 합니다.

한때는 잘 나갔던 사람들에게 희망은 그저 여길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한몫 잡아서 네년 상처도 성형수술도 하고 판한장 내야지. 그리고 어디 체육관이나 하나 내자”

똑같은 영화라고 하더라도 각자가 느끼는건 여러가지일듯 하네요.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한참을 싸우고 또 피비린내가 진동할 수도 있는 그저 그런 장면에 묘한 “느와르..” 스타일을 섞어 놓은 그런 영화일 수도 있지만, 몇몇 장면은 저한테는 멜로느낌을 팍팍 주더군요.

수진을 때리던 독불이 막상, 길가는 청년 셋에게 얻어 터질때는 수진은 독불을 감싸고 소리칩니다. 표현이 다른 사랑일까요?

두여자와의 대결을 하는(?) 독불이 경진을 때릴때는 주먹을 쓰지요. 거의 장난 아니게 집어 던지는데, 막상 수진한테는? 손바닥을 씁니다. 주먹이나 손바닥이나 아픈건 마찬가지겠지만, 차이가 있겠죠?

힘이 빠지긴 했겠지만 거의 죽어가는 독불이 수진에게 한마디 합니다.
“내가 그렇게 싫냐?”

쓰러진 독불을 보고선 거의 넋이 나간 수진.

예전에 연애하던때의 사진을 보고선 묘한 표정을 짓는 수진이나 막상 돈을 빼 돌릴 생각을 하다가 둘이 찍은 사진첩을 덮는 모습.

……

느와르 일까요?
아니면.. 묘한 애정영화일까요?

……

아참..
이 영화의 맨 마지막.. 엔딩 크레딧.. 이야 말로.. “피도 눈물도 없이”라는 게 제일 잘 들어맞는 부분입니다.
영화 자막이 올라가고 나서 맨 마지막에..
“영화속에 동물들은 안전합니다..” 라는 식의 글이 있더군요.
막상 영화속에서는 사람들도 죽어나고 하지만 신경을 쓰는건 “동물”입니다. 진짜 피도 눈물도 없지 않나요? 사람에 대한 예의는 없어지고 “동물 보호론자”의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다는게…”피도 눈물도 없이” 사람한테는 신경을 쓰지 않다니..

(영화 잘 보면 개끼리 싸우는 장면은 직접적으로 거의 안나옵니다. 두어컷 정도? 나머지는 투견장에 입장하는 모습들이 전부고.. 실상은 사람들 돈 흔드는 모습이 더 잘 보이죠.
그리고 피흘리면서 싸우는건 사람입니다. 한번 싸우면 코피라도 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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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지민아빠

중년의 모바일 개발자. (코딩은 안함. -_-a) 집안일에 열심인 아내와 아직은 어린 아들과 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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