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그날 새벽에 정동진에 갔다

간만에 만나서 였을까?
아마도 기억을 따진다면 채 일년전쯤에 친구 결혼식장서 잠깐 보긴 했었지만, 막상 술한잔을 같이 걸친건 몇년은 된듯하다.

학교대항전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이공대쪽으로 난 길가엔 푸르고 빨간 옷을 걸친 후배녀석들(사실 난 그들을 알지 못한다)이 이리 저리 어울려 근처 술집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아마 십년전의 나였다면 그들과 어울려서 스크럼을 짜고 돌며 불렀을 노래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사람이라는건 참 이상하다.
서너잔의 술이 돌고나서였을까? 한때는 좀 친해보려고 했던 사람의 사진을 친구녀석이 가지고 있는걸 보고는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진다.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 그냥 그저 그런 이유이겠지만(솔직히 그렇게만 생각하려고 한다) 왜 그가 그의 사진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하긴, 누군가에게 관심을 갖는다는게 사람마다 다를터니 그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는 순전히 자기에게 달려있을 수 밖에 없다. 엇비슷한 나이라서 그런건지는 모르지만 누군가 충고하길, 상대방이 아니라 그를 좋아하는(혹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의 감정에 더 매달리다 보면 결국에는 자신이 만들어 버린 허상만을 쫓아다닐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4년전 그에 대해서도 내가 아는건 없다. 뭘 생각을 했는지, 어떤걸 좋아하는지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내모습을 간파해서 그렇게 가버렸던것 같다. 친구는 그에 대해서 알려고 했었고, 난 그에게 다가가기만 했을 뿐이다.

옮긴 술자리에서 잠깐 졸던 친구가 깨어나더니만 어딘가 가자고 한다.
그냥 농담이겠거니 하면서 그럴바에는 정동진에나 가자고 했는데, 옆에 있던 다른 친구는 내귀에 “진짜로 저 녀석은 갈꺼다.”라고 알려준다.
아무튼, 예정에도 없이(사실 산다는 것에 예정이라는게 있기나 한가?) 지나가는 택시를 잡고는 정동진으로 떠났다.

4년이라는 시간이 조그만 촌구석을 많이 변하게 만든다.
그때만해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던 건물이 버스정류장을 에워싸고 있었고, 떠나기 무렵쯤에 들렸던 우체국도 잘 보이지 않는다. 철이 지난건지 바닷가 근처에 있었던 가게들은 보이지 않고 황량하게 파도만 치고 있었다.
낯이 익은 – 색이 바랬을만도 한데 간판은 거의 그대로인 – 민박집 하나와 버스정류장만이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전부였다.
행여나 그때 썼던게 남아있을까 하는 생각에 버스 정류장엘 갔으나 메모가 있을만한 자리에는 근처 도시에 있는 나이트 클럽 포스터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술 기운이 좀 남아 있었던건지 내 지지리도 궁상맞은 청승 때문이였는지 누군가 먹다 버린 음료수 병에 물을 받아와서는 포스터를 불려가며 뜯어 내기 시작했다. 이상스레 옆에 있던 친구녀석도 말이 없다. 분명 뭐라고 했을만도 한데 옆에서 거들기 시작한다.
기대는 기대만으로 족한다.
지척에 있으면서도 가지 못하는게 아니라 가지 않는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막연하게 생각만으로 끝냈어야 했던 일이였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쓴 메모에 가렸겠지만, 솔직히 어디에 써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이쯤이겠거니 하지만 그건 내가 지어낸 일일지도 모른다. 나중에서야 자기가 그런 감정을 가졌는지 조차 모른다고 했던게 맞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우리는 그날 새벽에 정동진에 갔다.
그때 각자 다들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난 제대로 떨쳐 버렸을까?

글쓴이 지민아빠

중년의 모바일 개발자. (코딩은 안함. -_-a) 집안일에 열심인 아내와 아직은 어린 아들과 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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